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22화 사연
-직원 5명이 같이 검진을 하려니까 그때(2년 전) 여기서는 예약이 밀려 있었나? 아무튼 자리가 안 나서… 우리도 회사 땜에 같은 날 해야 되니까 00에 가서 했어요.
네에~.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근데 그때 내시경을 하는데 앞에 두 명이 어찌나 꽥꽥 되는지 밖에서 기다리는데 와, 미치겠더라구요.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네에.
-그때 기억이 너무 안 좋아서 오늘 수면으로 한 거예요.
그럼 전에는?
-예, 일반으로 했는데…
그럼 (오늘도) 일반으로 하시지 왜…?
-아까 그… 거기서 말예요.
네.
-앞에 그 두 직원이 꽥꽥대고 나서 내가 하는데 막, 그냥 막 들이미는 거 같더라구요. 와~, 아프고 힘들고, 아이고 죽겠다싶더라구요.
…
-그래서 그 둘은 담부터는 내시경 못하겠다고, 죽어도 안 한다고. 그래서 이번에는 그 약 먹고 하는…
위장 조영 촬영이요?
-예, 그거 했어요. 나는 오늘 수면으로 한 거고.
(차트를 보며) 전에(4년 전) 여기서 하실 때는 일반으로 하셨네요?
-그러니까요. 여기서 했을 때는 어렵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직원들한테도 할 만하다고 해서 다 같이 가서 한 거고. 근데 거기서 해보고… 와, 여기가 얼마나 잘하시는지 알겠더라구요. 확 비교되니까.
여기서 하셨을 때 괜찮으셨으면 오늘도 그냥 일반으로 하시지…? 수면비 낼 거로다가 저녁에 맛있는 거 드시고(나의 단골 대사)
-하하. 아이고 근데, 이젠 힘든 것도 싫고. 오늘 같이한 집사람은 수면으로 계속했었는데 편하다고 그러더라구요. 에이 그래서 나도 그냥 수면으로 한 건데. 확실히 편하네요.
그렇죠. 돈의 힘이랄까… 하하
-그리고 00은 다시는 안 갈래요. 여기 박 원장님은 워낙 잘하시고 편하게 해주세요. 환자를 잘 다루시는 것 같애. 하하. 그리고 앞으로는 일반으로 안 할래요. 히히.
네에~ 하하.
약 기운이 남아서인지 정말 편해서 그러신지 어쨌든 기분이 좋아 보이신다. 그래서…! 나이가 더 드시면, 그러니까 앞으로 5~6년 뒤에는, 수면으로는 안 된다는 말씀은 안 드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