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94화 변했다…?
만 66세부터는 검진마다 인지기능장애(치매)에 대한 문진이 들어간다. (※참고←누르시오) 그중에 10번째 문항은 ‘예전에 비해 성격이 변했다’이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대답은 ‘그냥 예전 그대로’와 ‘조금 변했다’가 제일 많다. 둘을 합쳐 거의 98, 99%? 둘 중에는 ‘아니다’가 ‘조금 변했다’보다는 조금 더 많은 편이다. 아니라고 하시든 변했다고 하시든 어느 쪽이든 ‘분명’하게 대답하시는 분을 뵈면 약간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는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 문진을 도울 때마다 나 자신에게도 물어본다. 과연 내 성격은 변했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변한 것 같기도 하고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하다. 단순한 걸 너무 복잡하게 생각해서 답을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애매한 것의 경계에 대한 호기심도 한몫하는 것 같다. 그 애매한 것의 경계를 명확하게 가르는 것, 답을 찾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겠지만 실은 애매한 것 자체가 주는 재미를 좋아한다.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 답이 있기도 하고 또 바로 그런 이유로 때로는 답을 정할 수 없기도 한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게 재밌다.
이런 생각을 들게 한 분이 오셨다. 이 꼭지의 3화에 등장하셨던 바로 그분이다. (※참고←누르시오) 일주일 전에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보호자로 오셨다. 분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시지만 일단 10번 문항부터 달라지셨다.
